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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클루지 - 과거와 다른 오늘 그리고 정점에 있었던 기억

by 꿈청(꿈꾸는청년)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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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라는 책은 유튜버이자 사업가인 '자청'이라는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에서 내용 중에 이러한 말이 있다. 예전에는 설탕과 단 것들이 생존을 위해 무조건 먹으면 좋은(?)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몸에 좋지 않게 여겨진 것처럼. 모든 것은 다 완벽한 것은 없고 우리는 그 현재에서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클루지에 대한 내용에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에 워크래프트의 유즈맵 '파오캐'라는 게임이 있었다. 나는 그 게임에 엄청 빠져들었었고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준비하는 시기에도 게임을 했었다. 물론 흥청망청 고등학교 생활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상위권을 유지했었고 어차피 내신으로 가려고 했었기 때문에 수능에 크게 생각 안 했던 것뿐인데, 아버지는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한 분야에서 남들보다 엄청 뛰어나고 싶다면

아무튼, 나는 그 게임을 소위 말해서 그 당시 표현으로 '정점'이었다. 난 처음에 그 게임을 접하고 1~2년 정도는 그렇게 잘하지도 못했었고 그냥 게임을 즐기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고, 단순히 잘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그 게임에 정상을 찍고 싶었다. 그 게임에서 잘해지고 정상을 찍을 수 있던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잘하는 무리 곁으로 가라.

간단하다. 뛰어난 무리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초기에 게임을 할 때면 아무 상대방과 게임을 했었다가 잘하는 무리 알게 되었다. 그 채널에서 소위 날고 기는 상대들과 게임을 하다 보니 쑥쑥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잘해지는 것은 가능했으나 난 더 고팠다. 단순히 '걔 그냥 좀 잘해'라는 게 아니라 '걔 파오캐 정점이야'라는 말을 그 당시 듣고 싶었다. 그래서 정점이 되기까지 한 가지 방법이 더 필요하였다.

 

고수와 친해져라.

당시에 게임에서도 초고수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아프리카 bj를 하며 실컷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 상대방들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친해지려고 비위도 맞추고 엄청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들어올 때면 인사하고 같이 말동무도 해주고 ㅋㅋ. 그렇게 사람들과 친해져서 나는 결국 그들을 앞지르고 초고수가 되었다. 또한, 아프리카 bj로 게임 방송까지 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물론 초고수나 정점이라고 딱 정해져 있는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인정받는 그 기준에는 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게임에 미쳐있었다. 

 

 


오늘 클루지라는 책 리뷰를 보다가 지난 날 내가 해오던 게임이 생각났다. 게임을 그렇게 잘할 수 있었던 방법들 그리고 결국 잘해져 있던 내 모습. 난 생각했다. 그런 방식과 룰이 현실과 다를까? 아니. 똑같다. 

 

현실에서도 어느 한 분야에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그 분야의 정상들이 모여있는 집단이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그리고 그 집단 사람들과 친해져야 하는 것이다. 클루지에서는 과거와 다른 오늘의 기준이라고 해서, 이전에 '우두머리 성질'이 있는 사람들은 소위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면 뭉개버리고 싶어 하거나 그 열등감을 엄청 가진다. 물론, 오늘날에도 열등감이 무조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전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러한 방법들이 잘난 사람들 또는 무리 중에서 높은 사람을 제거하는 데 탁월한 방법이었을지는 모르나 오늘날에는 아니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사람들을 제거할 수도 없고( 죽이고 할 수 없으니 ㅎㅎ), 또한 열등감이란 것에 찌들어서 과거에는 좋게 작용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날에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보인다. 

 

최근에, 친한 친구가 이직을 하였다. 가만보면 그 친구는 일을 잘하고 싶어 하던 아이였고, 일을 잘하는 무리에 있었다. 그리고 친구는 그 무리에서 잘하는 사람들과 친해졌다. 하지만 난 조금 달랐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뭔가 그 친구보단 마음이 작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크게 못했다. 지난 직장 생활을 돌이켜본다. 어차피 직장 생활에서 일을 잘하면 좋은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일을 잘하면 일을 많이 시킬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적어지게 되고, 잘하는 무리 속에서 못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튀지 않게 된 걸까? 또, 잘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면 보다 더 뛰어날 기회가 있었는데도, 잘하는 마음이 그렇게 크지 않으니 딱 무리 속에만 있다고 해서 거기에 만족한 게 아닐까? 어쩌면 내가 무리 속에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밤에 센치해져서 적어보았습니다.

글이 좋았다면 공감 한 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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